Sunday, March 6, 2011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법


1. 클래식은 스타일이다
패션은 나이, 성별, 부유함의 정도, 직업 등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가 조언을 해줄 수는 있지만 만들어줄 수는 없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고 싶다면 스스로에 대해 솔직해야 한다. 자신의 약점을 직시하고 숨기려 들지 않고 다른 장점을 개발할 때 비로소 스타일리시해 진다. 지극히 단순함을 추구했던 오드리 헵번이 한 세대를 지나 지금까지도 스타일 아이콘으로 꼽히는 이유는 옷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자연스럽고 편안한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classic muses | 오드리 헵번
20세기 스타일 아이콘을 꼽으라면 단연, 오드리 헵번을 꼽을 수 있다. 그녀가 추구한 룩과 시그니처 아이템들은 클래식과 우아함이 무엇인지를 논할 때면 항상 회자된다. 대중에게 헵번은 취향과 스타일의 바로미터였다. 진주목걸이, 블랙 미니드레스, 플랫 슈즈, 화이트 셔츠, 프티 스카프 등 그녀가 선택한 아이템은 누가 착용해도 충분히 멋스러울 수 있는 기본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뜨고 지는 화려한 유행과는 달리 기본에 충실한 스타일. 이것이 바로 오드리 헵번이 스타일 아이콘으로 회자되는 이유다.

[ classic code 1 ]  기본에 충실한 아이템
오드리 헵번은 최신 유행이 늘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패션은 풍만한 몸매와 노출을 강조한 기존의 패션을 부정하는 동시에 새로운 패션을 정의했다. 디자이너 발렌시아가와 지방시, 오드리 헵번이 함께 완성한 그녀의 스타일은 그 당시 큰 영향을 주었다. 발렌시아가는 그녀에게 우아함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화려한 보석과 비싼 옷으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녀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고 프릴이나 나비매듭 등 장식을 전혀 달지 않은 옷, 즉 옷과 몸의 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옷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 classic code 2 ]  체형에 어울리는 스타일
편안함은 스타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예를 들어 긴 길이와 허리가 흘러내리는 바지라면 활동이 매우 불편해 보이는 것은 물론 몸매까지 엉망으로 보인다. 오드리 헵번은 언제나 옷을 과하게 입기보다는 덜 입어 편안함을 추구했다. 흰 팬츠와 흰 블라우스, 발레리나 플랫 슈즈. 화장은 거의 하지 않았고 보석을 과하게 걸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늘 우아해 보였다. 여기서 의미하는 편안한 옷이란 집에서 대충 걸치는 옷이 아닌 자신의 체형과 잘 맞아떨어져 활동하기 편한 옷이다.
[ classic code 3 ]  타협하고자 하는 유연한 마음 그녀는 굉장히 고집 센 구석이 있었는데 기본에 충실함이 무엇인가를 두고 언제나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스타일에 있어서는 여러 가치 판단과 타협하고자 하는 유연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영화감독 스텐리 도넨은 검정 바지와 검정 신발을 신고 촬영에 임하는 흑백필름 속 그녀가 배경에 묻혀버릴 것을 우려해 하얀 양말을 권유했다.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는 분장실로 달려갔지만 잠시 뒤 매무새를 가다듬고 하얀 양말을 신고 촬영장으로 돌아왔다. 비록 하얀 양말이 전체적인 검정 실루엣을 망가뜨리고 발에서 시선을 끊을 것을 알지만 더 이상의 투덜거림 없이 촬영을 계속했다. 나중에 그녀는 그 장면을 봤다면서 감독에게 카드를 보냈다. ‘양말에 관해서는 당신 말이 맞았어요. 사랑을 담아. 오드리가’라고.
[ classic code 4 ]  옷에 대한 애티튜드
클래식 패션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옷에 대한 세련된 애티튜드가 중요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드레스를 입고 쭈뼛거리는 여배우나 노출이 심한 드레스를 선택하고 가리기에 급급한 스타에게 부족한 것은 다름 아닌 옷에 대한 애티튜드. 오드리 헵번은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한 배우였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처럼 블랙 지방시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빵 조각을 베어물 때나 <로마의 휴일>에서 프티 스카프에 풀 스커트를 휘날리며 스쿠터를 몰던 그때도 그녀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결정할 줄 알았다.

classic style how to
클래식한 포인트
진주목걸이는 오드리 헵번과 재클린 케네디, 코코 샤넬까지 스타일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들이 사랑했던 주얼리다. 더없이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줄 뿐 아니라 진주의 빛이 얼굴빛을 밝혀줘 더욱 화사해 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는 진주목걸이. <티파니에서 아침을> 속 오드리 헵번처럼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고 싶다면 파스텔 컬러나 리틀 블랙 미니드레스에 매치하고, 단아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고 싶다면 진주목걸이와 귀걸이를 세트로 연출하는 센스를 발휘해보자.
기본 아이템 믹스매치
과거에도, 현재에도 패션 피플들이 가장 아끼고 애장하며 오래두고 입어도 싫증나지 않는 영원한 클래식 아이템이 있다면 바로 스트라이프 아이템일 것이다. 오드리 헵번 역시 스트라이프 니트와 스트라이프 사브리나 팬츠를 즐겨 입기도 했다. 이 아이템은 비슷해 보이지만 컬러의 배치나 줄무늬 간격 그리고 함께 매치하는 아이템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낼 수 있다. 오드리 헵번, 코코 샤넬이 즐겨 입었던 것처럼 클래식한 정장 팬츠에 매치해도 좋고 데님팬츠와 매치해 발랄함을 강조해도 좋다. 귀여운 느낌을 주고 싶다면 스트라이프 원피스를 선택해보자.
색다른 분위기 연출
단순한 것을 최고로 꼽았던 오드리 햅번도 매번 단순한 라인의 옷만 입었던 것은 아니다.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을 땐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롱 플레어스커트와 큐트한 퍼프 소매의 로맨틱 셔츠, 발목을 감싸는 스트랩 플랫 슈즈 등을 이용했고, 지적이고 고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할 땐 발목이 드러나는 타이트한 사브리나 팬츠와 볼륨 있는 블라우스, 발레 슈즈처럼 로맨틱한 플랫 슈즈를 매치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클래식한 분위기는 지키되 옷의 디테일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전천후 아이템의 활용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티파니 매장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뒷모습은 영화 속 명장면으로 꼽힌다. 블랙 리틀 원피스는 절제된 실루엣의 고급스러운 소재, 차분하게 바라봐야 눈에 들어오는 포인트 디테일을 가진 아이템을 선택하도록 한다. 이 아이템은 어떤 액세서리를 착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는 활용도 100% 아이템이다.
동안 메이크업
클래식 스타일을 논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자연스럽고 짙은 눈썹 표현이다. 오드리 헵번 스타일의 포인트 역시 짙은 눈썹. 두툼하게 표현된 눈썹은 어려 보이는 효과를 줄 수 있다. 눈썹 전용 펜슬로 빈 곳을 매워주는 느낌으로 그려주되 눈썹 산을 두껍고 짙게 그림으로써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라이너는 눈초리를 살짝 올려 깜찍하게, 핑크색 볼터치는 광대뼈를 중심으로 둥글게 굴려 사랑스러운 느낌을 배가시킨다.

2.클래식은 애티튜드다
사람을 처음 봤을 때 느껴지는 ‘포스’라는 것이 있다. 그 포스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다. 말투나 움직임, 시선 처리 등 모든 행동에서 그 사람의 정체성을 파악하게 된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 곧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세기의 미녀로 꼽히는 그레이스 켈리도 영화배우에서 모나코 왕비의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데는 클래식하고 우아한 이미지 메이킹이 한몫을 했다.

classic muses | 그레이스 켈리
최근 미국의 <우먼저널>이 독자들의 투표를 근거로 그레이스 켈리를 역사상 최고로 우아한 여성으로 선정한 바 있다. 그레이스 켈리는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정숙과 우아함의 대명사였다. 그녀는 동시대 배우였던 마릴린 먼로의 선정성과는 정반대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고상하면서도 품위 있는 이미지의 금발 미녀 켈리는 불과 27세에 모나코 왕국의 레이니에 왕자와 결혼해 영화계를 은퇴하고 현모양처의 꿈을 실현했다.  성공적인 이미지 메이킹으로 대중의 인기는 물론, 모나코의 왕비 자리에까지 당당하게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다.


[ classic code 1 ]  짧아도 굵게, 열정적인 도전 아일랜드 혈통에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인 그레이스 켈리는 <하이눈>으로 데뷔한 이래 <모감보>, <다이얼 M을 돌려라>, <이창>, <갈채> 등에 출연하면서 1954년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았으며 특히 고전적 우아미가 넘치는 외모와 기품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사실 그녀가 할리우드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고작 5년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가 여전히 신화로 전해지는 건 짧다면 짧은 그 시간동안 총 11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자신만의 한 가지 이미지를 계속 추구하는 경향이었다면 켈리는 히치콕 감독의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는 섹시한 캐릭터로, <갈채>에서는 시골처녀의 순박함 등을 표현하기도 했다.
[ classic code 2 ]  성공적인 이미지 메이킹
1956년 모나코 왕 레이니에 3세와 결혼한 이후에도 배우 시절 못지않게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레이니에 공이 그녀와 결혼한 것은 모나코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였다는 설도 있을 만큼 그녀의 이미지는 실로 매혹적이었다. 관광과 카지노가 주 수입원인 모나코로서는 기품 있는 고전미로 전 세계 남성 팬들을 설레게 했던 그레이스 켈리를 왕비로 맞아들여 국가 이미지 홍보효과를 극대화하려 했다는 설. 사실이든 아니든 그레이스 켈리의 이미지는 그만큼 아름다웠다. 또한 25세의 나이에 오스카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지자 여러 유명한 남자 배우들과의 염문설도 많이 생겼지만, 그녀는 도도하고 차가운 매력으로 이미지를 실추시키지도 않았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으며 인내와 기다림으로 소문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 classic code 3 ]  취미 활동, 그리고 후원
음악이나 무용, 영화 분야 등의 예술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레이스 켈리는 특히 자신의 혈통인 아일랜드 문화에 애착이 깊었다. 아일랜드 관련 책과 악보, 영상물 등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그녀의 컬렉션들은 ‘그레이스 왕비 도서관(Princess Grace Library)’에서 볼 수 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 활동을 감상하고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1964년 ‘그레이스 왕비 재단(Princess Grace Foundation)’을 세워 유망한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 classic code 4 ]  인내와 절제
켈리는 1954년 화보 촬영을 위해 모나코 왕실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모나코 왕자였던 레이니에 3세와 결혼한다. 여배우로서의 화려한 삶을 포기하고 왕국에 입성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레이니에의 진심 어린 러브레터 공세에 마음을 받아준 것. 훗날 켈리는 레이니에의 눈빛에서 편안함을 느껴 몇 시간이나 들여다볼 정도로 좋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결혼 후에도 게리 쿠퍼, 게리 그랜트 등 당대 최고의 남성 스타들이 계속 유혹했지만 일편단심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결혼 후 왕비의 역할을 잘해오던 그녀였지만 영화에 대한 욕망을 저버릴 순 없어 <마니>의 주연을 맡으며 할리우드로 돌아올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모나코의 국민들은 왕비가 도둑 역에다 숀 코너리와 로맨스에 빠지는 역을 연기하는 것에 반대하기 시작했고 결국 켈리는 포기하게 되었다.
자의든 타의든 이런 수많은 유혹과 욕망도 절제할 수 있었던 그녀였기에 지금도 세기의 연인으로 모나코 국민들과 세계의 팬들에게
신화로 남아 있는게 아닐까.

3. 클래식은 휴머니즘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로 최근 고위층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기부나 봉사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진정한 클래식의 의미도 이 안에 있다. 세계 대중의 사랑을 받은 오드리 헵번이나 그레이스 켈리도 헌신적인 봉사와 기부 정신을 몸소 보여주었기에 그녀들의 명성이 더욱 높아진 것이 아닐까. 미국 최초의 흑인 영부인 미셸 오바마 또한 안으로는 훌륭한 내조와 양육을, 밖으로는 적극적인 봉사와 기부 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classic muses | 미셸 오바마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 명문대 출신의 변호사로 화려한 경력과 눈에 띄는 패션 센스를 두루 갖춘 그녀는 엘리트로서가 아닌, 가정의 양립을 추구하는 ‘슈퍼맘’으로 대중을 열광케 한다. 어두운 성장기를 보낸 오바마의 상처를 위로하면서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책임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따끔한 조언도 서슴지 않는다. 딸들에게는 훌륭한 교육자로, 아무리 바빠도 소홀히 하는 법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딸들은 내가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식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는 평범한 엄마다.

[ classic code 1 ]  든든한 내조
미셸은 2007년 남편의 선거 유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유명세를 얻었다. 선거 활동을 하면서 단지 그림자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단독 연설을 하며 여성 표를 책임지는 정치적 동반자 역할까지 해냈다. 또한 오바마의 대선 출마 당시 시카고의대 부속병원 부원장으로 연봉 30만 달러를 받던 그녀는 남편을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직접 선거운동에 참여할 정도로 열의를 다했다. 즉 미셸식 내조법의 포인트는 ‘헌신’과 ‘동반’을 적절히 섞은 데 있다. 
[ classic code 2 ]  인간적인 면모
많은 미국인들이 인간적인 모습을 지닌 대통령을 친근하게 여기는 편이다. 버락 오바마가 친근감 있는 대통령으로 이미지화되기까지 미셸의 영향이 컸다. 선거유세 당시 그녀는 “남편은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놓는 나쁜 버릇이 있다”, “백악관 입성 후에도 엄마 역할이 제1의 임무”라고 발언하는 등 일반인과 같은 아내와 엄마의 면모를 드러내며 친근감을 줬다. 당선 후 <USA 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딸들을 놀이 친구에게 데려다준 뒤 주변 엄마들과 수다 떠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는 빡빡한 일상 속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해소법을 찾은 셈인데, 이런 모습은 친근감을 줘 미국 내에서 워킹맘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미셸은 자신이 그토록 강조한 인간적인 대통령 오바마와 더불어 가장 인간적인 영부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 classic code 3 ]  가족애 
오바마 부부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가족이다. 대선 승리 이후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백악관 생활 경험이 있는 힐러리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의 학교 문제를 상의한 일이었다. 당선인 신분으로 백악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에도 미셸은 시간을 쪼개 아이들이 다닐 학교들을 둘러봤다. 그렇다고 학교 공부에만 매달리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말리아와 사샤에게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한다. 사샤의 경우는 체조와 탭댄스를 배우고 있다. 미셸은 남편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 하고 남편이나 자신의 연설을 들려주는 등 두 딸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 classic code 4 ]  사회봉사
“우리는 때때로 그들(저소득층)을 외면하기도 하고, 그들은 될 수 없으며 또 해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봉사와 기부 활동은 그들의 자아를 찾고 다양한 방법들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해 준다.” 미셸 오바마는 사회봉사는 지역사회와 주민들을 더욱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녀는 과거 시카고 남부지역에서 소수민족과 저소득층들을 위해 유권자 등록 및 취업운동 등 지역활동가로 일하기도 했으며, 1993년 젊은 층의 공공기관 취업을 돕는 ‘퍼블릭 앨라이스’라는 비영리단체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졸업식 이전까지 10만 시간의 봉사활동을 마칠 경우 졸업식 축사를 하겠노라는 제안으로 대학생들의 봉사활동을 유도하는가 하면, 9.11 테러 추모활동의 하나로 버지니아 주 맥클린 지역의 페인트칠 자원봉사에 직접 참여 하면서 몸소 봉사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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